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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묻힌 김형오 의장의 ‘직권상정’

나의 낮은 읊조림 | 2009/04/30 22:17 | Posted by 시대비판 장정욱

T.S 엘리엇이 그랬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

그렇게 잔인한 4월의 마지막 날, 전직 대통령이 좋지 않은 일로 검찰에 출두했다.

‘피의자’의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현재).
언론은 밤을 새워 ‘그’의 흔적을 더듬고 날이 새자 이번엔 ‘추격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솔직히 나도 대검찰청 앞에서 괜히 기웃거렸다. 기사를 쓸 생각도 없으면서 말이다.

언론인의 사명이란 핑계가 부끄럽기도 하다. 내 행동이 과연 ‘사명’에 따른 것인지 단순히 ‘분위기’에 따른 것인지 아직 구분이 잘 안된다. 

-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된 가운데 노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북핵저지시민연대·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를 비판하는 노사모 회원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아무튼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의견’들을 내 놓고 있기에 나의 미진한 생각 따위는 널어놓고 싶지 않다.

그런데……. 현재 시각 오후 9시 30분. 국회에서는 씁쓸한 일이 진행되고 있어 이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미진한’ 내가 아니면 ‘노무현 사건’에 묻혀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기어코 직권상정의 칼을 뽑아들었다. ‘한국 토지주택공사 법안’, ‘소득세법 일부개정안’, ‘법인세법 일부개정안’ 등 3가지 법안을 직권상정했다.

당초 은행법과 금산분리법도 직권상정 대상이었지만 두 법은 법사위를 극적으로 통과해 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 김형오 국회의장.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묻혀 직권상정으로 통과되는 법안들을 소개한다.
우선 한국 토지주택공사 법안.

이 법안은 말 그대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하는 내용이다. 토공과 주공의 입장 차이로 오랫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법안이 정부의 강력한 통합 드라이브로 순식간에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다.

토공과 주공 본사 건물의 입주를 놓고 경상남도와 전라남도가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소득세법 일부개정안과 법인세법 일부개정안.

개인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은 법안이라 생각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소득세법 개정안은 1가구 다주택자(3주택 이상)에 대한 양도세 중과분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소득세법 개정에 따라 부차적으로 개정해야만 하는 법안이다.)

소득세법을 쉽게 설명하자면 집을 3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 집을 매매할 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해 왔는데 이를 일반 세율로 낮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양도 이익의 45%를 세금으로 내도록 해 왔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집이 3채인 사람이 그 중 1채를 팔아서 1억원의 이익이 생겼다면 4500만원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세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율을 높인 이유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조금이나마 막아보자는 의도인 것이다.

어차피 집 한 채 갖기도 힘든 우리 서민들에겐 있으나 마나한 세율제도인 것이다. 철저하게 부자들의 ‘투기’를 제제하기 위한 법이다. 원래는 60%까지 세금을 물리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45%까지 낮춘 것이다. 그것도 45%로 낮춘지 3달쯤 됐다. 역시 ‘부동산’ 정권답다.

그런 양도세 중과제도를 이번에는 아예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내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고, 투기지역(강남 3구)에는 일반 세율에 10%의 세금을 가산하는 내용을 담긴 했다.

우는 아이 젖 물린다는 심정이었을까? 야당과 여론의 반발이 워낙 심하다 보니 강남 지역 하나 겨우 빼 줬다. 그것도 완전히 뺀 것이 아니라 일반 세율에서 10%만 더 부과하는 것으로 고쳤다. 우는 아이에게 젖 한 모금 빨게 해 준 것이다.

-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 버스가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북핵저지시민연대·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과 노사모 회원들이 대검찰청 정문 양 옆에서 대치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런 법안들을 직권상정했다. 언론이 온통 ‘노무현’에 미쳐 있을 때 그동안 여론에 밀려 추진하지 못했던 법안들을 후다닥 처리하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재선거에서 0:5로 패한 것에 대한 반발심리인지도 모르고.

한나라당은 이번 재선거에서 패배를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민심을 잘 모르는 듯 하다. 아니면 말로만 받들겠다는 것이거나.

한나라당은 아직도 부동산 귀족을 위한 정책에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재선거가 끝난지 만 하루가 지났고 “민심을 받들겠다”는 말을 내 뱉은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잊어버린 듯 하다. 잊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국민들이 재선거를 통해 ‘반성’을 요구한지 하루만에……. 그것도 언론이 ‘노무현’ 사건에 미쳐있을 때, 늦은 밤 본회의를 열고 결국 직권상정이라는 ‘반민주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직권상정…….
엘리엇의 말이 맞는 듯 하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것도 ‘가장’ 말이다.